김지민 개인전, The Ruler
KAIST Research & Art Gallery
Apr. 3 – May 31, 2012
현대사회에서 상품의 라벨은 소비상품, 또는 소비 그 자체를 상징한다. 또한 그것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물질, 더 나아가 그것을 지향하는 극단적인 욕망이 낳은 물질 만능주의를 가리키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라벨의 뒷면은 단지 여러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실들의 조합이다. 이러한 라벨 뒷면을 하나의 유닛으로 하여 여러 개를 이어 붙이는 흥미로운 작업을 해온 작가 김지민, 그의 아홉 번째 개인전이 KAIST Research & Art Gallery에서 두 달간 열린다. 이번 전시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The Holic Family’, ‘Oxymoron’, ‘The Fan’ 그리고 ‘The Ruler’ 이렇게 크게 네 개의 연작들로 구성된다. 먼저, 마치 동공 형태의 얼굴을 지닌 가족의 단체 조각상, ‘The Holic Family’는 시각적 대상에 홀릭되어 있는 현대인을 표현하고 있다. 소녀, 소년, 20대 여성, 50대의 여성, 그리고 남성의 조각상의 얼굴은 각각 맥도날드 해피밀 장난감, 닌텐도 게임, 명품 구두와 가방, 노화를 방지하는 화장품, 그리고 스포츠카와 고급 승용차의 디지털 이미지로 가득 메워져 각 세대가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순백의 조각상은 화려한 상품 이미지들과 더욱 대조를 이루며 마치 그런 욕망이 제거된 현대인에게는 순수함 아니면 그 반대로 공허감만이 남아 있을 것을 암시한다. 이 작업의 얼굴에 들어간 동심원 형태로 이어 붙여진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사진 작품으로서 다시 전시된다. 이번 전시 장소인 Supex홀의 2층 중앙에 설치된 ‘The Oxymoron-the gold fish’는 모순어법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서로 만나면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물고기 형상은 각각 라벨의 앞, 뒷면으로 구성된 양 옆면들을 지니고, 이 작품은 예술과 상업의 최전선이 맞부딪히는 하나의 장소가 된다.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라벨을 동심원 형태로 이어 붙였던 ‘The Fan’ 설치 작품을 영상작업으로 편집한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The Ruler’ 시리즈는 여러 개의 라벨을 이어 붙여 각국의 최고액화폐의 인물을 재현한 것이다. 거대한 크기의 작품들은 지배자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화폐, 즉 자본의 가치가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막강함을 보여준다. 화폐는 어쩌면 소유에 대한 욕망의 정점일 것이며, 이러한 소유의 욕망은 우리들 삶 한가운데 놓여 있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팝적이면서도 위트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며,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사회를 오랜시간을 들인 수공예적 노동으로 묘사하는 등 작품의 여러 요소들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김지민 작품이 줄 수 있는 매력이다. 예술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은 양 극단에 위치하면서도 그 차이는 아주 작은 데서 비롯된다. 그것을 간파한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위트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