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만들어진 베네치아는 온종일 바다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도시다. 오전과 한낮의 바다는 그동안 많이 봐온 터라 익숙하고 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바다는 밤바다다. 물론 밤바다도 먼발치에서 몇 번 봐온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한참 바다에서 떨어져 하늘과 경계가 없어진 그저 해 가져가 문 바다가 보인 것이었다. 그저 눈앞에 있기에 보았던 것이다. 보여서 보는 것과 대상을 인식하고 보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베네치아의 밤바다는 같이 있었다. 바다의 한가운데, 바다의 위에서 바라본 밤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어두운 바다는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기운생동하고 있었다.
그동안 바다에 대한 인식은 휴식, 여행, 생동감, 설렘 등 밝고 기대되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날 보았던 바다는 그동안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다를 생각하고 있던 관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베네치아의 밤바다는 어둡고 무거웠으며 불편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초점이 닿는 곳에 검은 바다만 보였지만 오랜 시간 그 바다를 응시했다.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고 무감정의 상태에서 오로지 본다는 행동에만 집중이 되었다. 그 바다의 색은 현(玄) 색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현의 색은 뚜렷하게 어떤 색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색이다. 현의 색이 언급된 ‘설문해자’에서는 ‘黑而有赤色者爲玄’ 검으면서도 붉은색을 띠는 것이 '현(玄)'이다.라고 정의하였고 다른 뜻으로는 우주의 색, 가물가물하다, 아른거리다는 뜻을 가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형이상적인 색이다. 동양에서는 먹의 색을 현색이라고 한다. 베네치아의 골목골목 또한 매우 아름답고 찬란한 광장도 멋지지만 그것들은 밤바다만큼 깊은 여운은 아니었다.
그 바다의 감정, 먹을 품은 붓으로 반복해서 점을 찍는다. 점을 찍을수록 접점이 생기고 그 안에서 번짐이 일어난다. 그 번짐은 계속해서 가라앉는다. 반복적으로 점을 찍지만 반복의 결과는 매번 다르다. 생체 리듬에 따라 일렁이는 형상을 만든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반복이다. 중첩이 될수록 허의 공간이 생겨나고 깊어진다. 허의 공간 구석구석 감정이 스며들 틈을 만든다.
반복하는 행위를 사람의 생에 비유하면서 작업을 하곤 한다. 흰 종이와 닮은 삶에 자국을 남기는 사건들이 생겨나고 그 자국들이 쌓여서 각자의 개성과 특색, 인격이 나타나고 삶을 살아간다. 더 좁게는 하루하루를 빗대어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의미가 없고 지루한 매일이 반복되는 삶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하루가 모여서 남들과는 다른 유일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작업들은 언뜻 보았을 때 동일한 패턴과 모습을 나타낸다. 방식만 같은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결과물인데 말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생각들은 많은 갈등을 만들어낸다. 자신과 닮아 보이기에 느끼는 감정과 생각도 닮았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타자와의 관계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작고 큰 문제가 생긴다. 비슷해 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개체임을 인지하고 오로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